사진 위/흥덕 남당의 '임진창의남당회맹단기적비':의병장 채홍국과 고덕붕 등 92인이 이곳에 모여 삽혈동맹(歃血同盟)을 맺고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칠 것을 맹세하였다.
사진 아래/채홍국의 실기 '야수실기'(김립중앙박물관 소장):호벌치전투에 대한 문헌은 다른 곳에는 거의 나오지 않고 주로 채홍국의 유고인 <야수집(野叟集)>과 김영년의 유고인 <겁암집(怯庵集)>에 나온다.ⓒ부안21

채홍국과 정유재란 호벌치싸움

채홍국(蔡弘國, 1534∼1597)의 자는 광보(光輔), 호는 야수(野叟), 본관은 평강(平康)이다. 고려시대 문하시랑평장사를 지낸 경평공(景平公) 채송년(蔡松年)의 후손으로, 예조판서를 역임한 채충경(蔡忠敬)의 현손(玄孫)이며, 사정(司正) 채치의(蔡致義)의 아들로 부안에서 태어나 장성한 후에는 흥덕(興德)의 남당(南唐)으로 이주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채홍국은 의병장 고경명(高敬命)과 김천일(金千鎰)의 격문을 보고 의병들을 모아 금산(錦山)으로 가 고경명과 함께 싸우다가 패전하자 흩어진 군사들을 다시 모아 끝까지 싸울 것을 다짐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는 세 아들 채명달(蔡命達)·채경달(蔡慶達)·채영달(蔡英達)은 물론, 채씨 가문사람 30여 명을 거느리고 고덕붕(高德鵬), 조익령(曺益齡), 김영년(金永年) 등 92인과 함께 흥덕(興德)의 남당(南塘)에서 삽혈동맹(歃血同盟)을 맺고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칠 것을 맹세하였다.

그 뒤, 왜적이 순천(順天)을 침범했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의병을 거느리고 순천의 석보창(石堡倉)까지 추격하여 끝내 격퇴하였다. 이러한 공을 인정받아 조정으로부터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에 제수(除授)되고, 다시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로 승격되었다.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앞의 92인 외에 33인을 추가하여 정유창의동맹(丁酉倡義同盟)을 맺고 유사시에 대비하고 있었다. 마침내 왜적이 부안에 쳐들어오자 이들은 호벌치에서 격전 끝에 의병 거의가 순절하였다.

호벌치싸움이 기록되어 있는 <야수집(野叟集, 야수는 채홍국의 호), <겁암집( 㤼庵集, 겁암은 김영년의 호)은 당시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곧 4월 14일 아군은 징을 치며 진군 돌격하였는데 김영년이 적의 부장 아이대(阿伊大)의 칼에 찔려 즉사했다. 그런데 적병 하나가 그의 코를 베어 가지고 도망갔다. 조익령과 최응심(崔應深)이 서로 그를 구하려고 가 보았으나 이미 죽은 뒤였다. 채홍국과 채우령(蔡禹齡)이 분을 못 이겨 적을 급습하자 적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당황했다. 이 때 김영년의 아들 헌은 아버지의 원수를 갚으려고 적진에 뛰어들어 적 두 명을 칼로 찔러 죽이고 그 배를 갈라 간을 씹어 아버지의 원수를 갚았다.

한편 고덕붕, 오송수(吳松壽), 이번(李蕃) 등은 적에게 모두 사로잡혔으며, 나기인(羅起寅)은 화살에 맞아 죽었다. 나기인의 종제 나기종(羅起宗)은 그의 형의 시체를 찾지 못하여 초혼(招魂)하여 갔는데 그도 18일에 싸우다가 죽었다.

15일에 적이 장등(長登)에 진을 치자 채홍국은 군사를 이끌고 그곳을 급습하였다. 16일 채우령과 이시화(李始華)가 죽었고, 17일에는 이익성(李益盛)이 적에게 해를 당하여 죽었다. 18일에는 임식(林植)이 적에게 잡혀 죽었다. 20일에는 조익령이 적에게 잡히자 채홍국이 그를 구하려고 적의 칼날을 무릅쓰고 쫓다가 조익령과 함께 죽었다. 22일에는 박영동(朴榮東)과 채상(蔡瑺), 최유서(崔有書), 김정립(金廷立) 등이 죽었으며, 23일에는 채명달(蔡命達)과 전시춘(田始春), 임세무(林世茂) 등이 죽었다. 그리고는 더 이상은 혼란하여 쓰지 못한다고 위의 두 책에 기록되어 있다.

한편 호벌치싸움에 참가한 의병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의려장(義旅將):채홍국(蔡弘國)
맹주장(盟主將):고덕붕(固德鵬)
참모관(參謀官):조익령(曺益齡), 채우령(蔡禹齡)
군기도감(軍器都監):김경덕(金景德)
부장(部將):채홍조(蔡弘祖)
선봉(先鋒):오봉수(吳封壽)
전량도감(典糧都監):이민복(李敏復), 이번(李蕃), 주번길(朱蕃吉)
금장(禁將):김수인(金守仁)
부봉(副鋒):김경장(金景章)
조군향사도감(調軍餉士都監):김영년(金永年)
봉기관(鋒起官):박영동(朴榮東), 채대형(蔡大亨), 채중달(蔡仲達),
부감군(副監軍):임기(林機), 채명달(蔡命達)
점정도감(占丁都監):김영무(金英武), 채상(蔡瑺)
돌격장(突擊將):채경달(蔡慶達), 이민덕(李敏德), 윤흥은(尹興殷)
분관(焚官):채대림(蔡大臨), 나기인(羅起寅)
부격장(副擊將):최언심(崔彦深), 최유청(崔有靑), 김응태(金應兌)
훈련도감(訓練都監):채봉(蔡鳳)
부감(副監):오송수(吳松壽), 박추(朴樞), 김상추(金尙秋), 이민부(李敏敷)
습사도감(習射都監):배수의(裵守義)
부사(副射):윤흥수(尹興壽), 채영달(蔡英達), 이작(李綽), 이성춘(李成春), 조익수(曺益壽), 탁상(卓祥)
종사관(從士官):배덕량(裵德良), 김방필(金邦弼), 임세무(林世茂), 임대일(林大一), 나기종(羅起宗), 채치원(蔡致元), 전시춘(田始春)
시포도감(矢砲都監):김헌(金헌)
좌대관(左隊官):채구(蔡球), 채대원(蔡大元), 황득중(黃得中), 허섭(許燮), 김상동(金尙同), 채홍업(蔡弘業), 전시추(田始秋), 채홍우(蔡弘宇), 이인영(李寅永), 채영달(蔡永達)
우대관(右隊官):이번위(李蕃衛), 채영(蔡英), 채인달(蔡寅達), 임세장(林世章), 채혼(蔡混), 채이달(蔡利達), 김이명(金以鳴), 채장(蔡璋), 채홍무(蔡弘武), 이인발(李寅發)
전초장(前哨將):박경덕(朴慶德), 채침(蔡琛), 김대진(金大振), 이득춘(李得春), 허정천(許鼎天)
후초장(後哨將):채이달(蔡二達), 김홍녕(金弘寧), 정대열(丁大悅), 채홍서(蔡弘緖), 최명동(崔鳴東)
감포관(監浦官):이익성(李益盛)
부감(副監):김영(金榮)

<호남절의록(湖南節義錄)>과 <호남삼강록(湖南三綱錄)>에 따르면 위의 의병들 외에도 유희방(柳希芳), 김홍원(金弘遠), 이유(李瑜), 김경덕(金景德), 김경장(金景章), 권대붕(權大鵬), 김홍달(金弘達), 채춘봉(蔡春峰), 김억일(金億鎰), 배종의(裵從義), 이림(李림) 등이 이 싸움에 참가하였다. 유희방은 이 싸움에서 적병 수백명의 머리를 베는 수훈을 세우고 9월 15일 장렬히 전사하였으며, 이유는 이와는 별도로 의병을 거느리고 상서면 감교리의 청등(靑燈)에서 3일간 치열한 전투 끝에 적에게 막대한 인명 피해를 입히고 그도 또한 전사하고 말았다. 이에 그의 부안 부안김씨는 부군이 전사하는 것을 보고 죽창을 들고 적진에 뛰어들어 남은 군졸을 지휘하며 싸우다 또한 전사하고 말았다. 당시 이유 부부의 시신을 싸움터에서 거두지 못하여 의복만을 합장했는데, 후에 사람들은 이곳을 퇴왜치(退倭峙)터라 부르고, 타루비(墮淚碑)를 세웠다. 또한 김홍달은 별도로 의병을 거느리고 곳곳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웠는데, 이 싸움에도 참여하여 적의 퇴로를 끊고 수륙 양면작전을 감행하여 적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김경덕, 겸경장 형제와 권대붕도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호벌치전투에 대한 문헌은 다른 곳에는 거의 나오지 않고 주로 채홍국의 유고인 <야수집(野叟集)>과 김영년의 유고인 <겁암집(怯庵集)>에 나온다. 물론 그 내용에 다시 엄밀히 고증해야 할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부안군지>, <전라북도지>에 기재되어 있다.

[채홍국의 상훈과 추모]
지사(知事) 유발(柳潑)이 행장(行狀)을 짓고, 판관(判官) 정범조(丁範祖)가 비문을 지었다. 1872년(고종 9) 병조판서에 증직되었으며, 사제(賜祭)하고 복호(復戶)[충신·효자·열부 등에게 노역과 전세(田稅) 이외의 잡부금을 면제하던 일]되었다. 이곳 호벌치에는 1965년 ‘정유왜란호벌치전적비(丁酉倭亂胡伐峙戰績碑)’가 세워졌으며 그 일원이 전라북도 기념물 제30호로 지정되었다.<참고문헌:전북의병사>

/허철희huh@buan2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