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재란호벌치전적지ⓒ부안21

'정유년에 왜가 또다시
우리의 강토를 침입하니 ...'
[부안문화재답사-39]정유재란호벌치전적지

정유재란호벌치전적지
종 목:전라북도 기념물 제30호  
명 칭:정유재란호벌치전적지(丁酉再亂胡伐峙戰蹟地)  
분 류: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전적지/ 기타전적지  
수량/면적: 일원
지정(등록)일:1976.04.02
소 재 지:전북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 796-3  
소유자(소유단체):국유
관리자(관리단체):부안군

호벌치는 지금의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의 유정자고개이다. 임진왜란의 막바지 싸움인 정유재란(丁酉再亂, 선조 30년, 1597) 때 이곳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져 이 지방의 많은 의병이 순절하였다.

임진왜란(선조 25년, 1592) 때 채홍국이 중심이 되어 부안, 고부, 흥덕, 고창 등지에서 규합한 92명의 충의지사가 흥덕의 남당에 모여 삽혈동맹을 맺고 죽음으로써 나라를 지키자는 맹세를 한 뒤 의병을 일으켜 전라도 순천지방까지 진출, 의병활동을 전개한 바 있었다.

그 후 정유재란 때는 임진왜란 때와는 달리 왜군은 주력부대를 전라도에 투입하여 곳곳을 짓밟았는데, 이 때 왜병들은 해로를 이용해 줄포에 상륙하여 부안으로 진격하여 왔다. 그러자 채홍국이 다시 뜻있는 의사 33명을 추가하여 도합 126명의 의병이 호벌치에서 왜병을 맞아 싸웠으나, 수적인 열세에 밀려 많은 의병들이 전사하였다.

특히, 4월 중순 이후 약 1주간에 걸쳐 계속된 호벌치전투에서는 의병장 채홍국 3부자, 김영년 부자는 물론, 의병 대부분이 전사하는 일대 혈전을 치렀음에도 불구하고, 부안·흥덕 일대는 결국 적의 수중에 들어가고 말았다. 이 전투에서 의병이 적을 격퇴하지는 못하였으나 무명의 향촌선비들과 농민·천민·승려계층이 하나로 결합, 최후까지 침략군에 대항하여 싸운 의병항쟁이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한편 이곳 호벌치에는 1965년 8월  ‘호벌치전적비’를 세워 당시 순절한 충의의 선비를 기리고 있다.

호벌치전적비문

아! 부안 호벌치는 정유재란이 일어났을 때 창의(倡義)한 제공(諸公)의 전적지이다. 그로 삼백육십구년이 지나 을사(1965)에 이르러 관민이 뜻을 모아 비를 세움은 더욱 풍절(풍절)을 권면하고 충혼을 위안코자 함이다.

아! 섬 오랑케의 남을 어찌 말로 다 할 수 있으랴. 하늘이 우리나라를 열고 성신(聖神)이 이루어 나라를 세운지 2백 년, 인(仁)과 의(義)를 갑옷과 투구에 대신하고 교육을 활과 포로 여겨 문치(文治)가 무(武)에 앞서 무와 겨룰 수 없었다.

저 천성이 짐승과 같은 섬 오랑케들이 몇 년을 두고 틈을 엿보다가 마침내 선조 임진에 이르러 명(明)을 치겠다는 것을 거짓으로 내세워 대군으로 북상하여 우리의 강토를 짓밟아 회진(灰塵) 시키니 종사(宗社)는 막히고 백성들은 수천 리를 환동(還東)하니 참화를 입지 않은 곳이 없었다. 정유년에 이르러 쳐들어온 적은 더욱 방자해져 황해로부터 쳐들어와 부안을 근거지로 하여 호남과 영남을 칠 기회를 엿보니 국가의 존망이 여기에 달리게 되었다.

이때에 의사 채홍국 외 92인의 선비에 35인이 추맹(追盟)하여 흥덕에서 왔으며, 김홍원은 변산에서, 이유는 도화동에서, 유희방은 유정재에서 충성의 비분을 참지 못하여 궐기하여 의려(義旅)를 일으켰지만, 그 수는 천(千)이 못되어 숫적으로 당하기 어려웠고, 병기도 적과 같지 못하나 수십 회에 걸친 싸움에서 혹은 크게 이기기도 하고, 혹은 패하기도 하니 그 공이 또한 분명하게 드러남에 족했으며 천의 군사로 수만의 적과 싸워 왜적이 서쪽으로 향함을 막아 호남과 영남을 지켰음은 누구의 힘이었겠는가?

아! 신라와 고려를 돌아볼 때 수나라, 당나라의 침입도 많았지만 왜의 피해는 막심했다. 왜가 우리의 강토를 침입함이 여러 차례인데 정유(丁酉)와 같은 비참함은 없었다. 제공(諸公)들이 나와 죽음을 돌아보지 않고 오직 나라의 난을 만나 부자(父子)·조손(祖孫)·형제(兄弟)·부부(夫婦)가 맨주먹과 칼만으로 머리를 적에게 돌려 싸우니 그 생사와 승패는 같지 않았으나 나라를 위한 충성심은 한가지였으며 전후(前後) 전적의 크고 작음은 있었지만 임금에 충성을 하기 위함은 같았다. 그 공과 지위는 같은 것으로 만고에 걸쳐 없어지지 않은 것도 또한 같은 것인데 이제껏 전적을 널리 알릴만한 몇 자의 비(碑)가 없이 공산유곡(空山幽谷) 거친 들에 초목(草木)만 무심히 우거져 있을 뿐이며 시냇물 소리만이 처량하고 그 정충(精忠)의 원망을 호소하듯이 소리쳐 운 것 같았는데 하늘이 무심치 않아 다행히 우리나라가 광복이 되어 관·민이 일치하여 우뚝한 큰 비(碑)를 세워 길 가는 사람으로 하여금 손을 얹고 바라보며 절하게 하니 어찌 나라에 충성을 장려하려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것은 또한 백제에 아름다운 풍속을 기르는 것이기도 하다. 그 정령은 위에서 내려와 이것을 거울삼아 조국을 길이길이 지켜줄 것이다.

단기 4289년 8월

/허철희huh@buan2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