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부님’은 먼 곳에…적기 농작업도 먼 곳에


　<농민신문>은 기자가 농업ㆍ농촌 현장을 직접 체험하고 이를 기사화한 ‘밀착 현장…농촌 속으로’를 연중기획으로 게재합니다. 농업인들이 농사를 지으면서 겪는 고충을 함께 느끼고 생생하게 전달함으로써 독자 여러분과의 소통을 강화하고 현장에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번 호에서는 첫 순서로 극심한 일손 부족 탓에 배 열매솎기 작업에 차질을 빚고 있는 천안 지역 과수농가를 찾았습니다.

“농사가 아니라 전쟁이에요, 전쟁. 일손 구하기 전쟁이요.”

5월24일 농촌의 일손 부족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체험하기 위해 배 주산지인 충남 천안시 서북구 직산읍·성환읍 일대를 찾았다. 이곳에서 2일간 총 5농가를 만나 일손 부족의 심각성을 몸소 느꼈다. 농업인들은 한결같이 “일손 부족이 감내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며 아우성이었다. 한 농업인은 “서로 인력을 먼저 차지하려고 농가간에 다툼까지 날 정도로 일손 구하는 것이 ‘총성 없는 전쟁’과도 같다”고 말했다.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던 일손 부족 문제의 심각성이 피부에 와 닿는 순간이었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최예천씨(44·직산읍 석곡리) 배 과수원. 열매솎기가 한창일 시기라 인부들로 북적일 줄 알았는데 웬일인지 한산한 모습이었다. 최씨가 부인과 단 둘이 더딘 속도로 열매를 솎고 있었다. 기자가 “왜 두 분만 일하시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과수원을 돌며 작업을 해주는) 팀을 기다리고 있는데 차례가 오려면 아직도 멀었다”며 “그렇다고 마냥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어 부인과 조금씩이라도 열매를 솎고 있다”고 말했다. 작업을 하긴 하지만 2.7㏊(8,000평)에 이르는 드넓은 과수원인지라 표시는 잘 나지 않았다.

최씨 과수원에서 작업을 해주기로 한 팀은 올해 총 7농가를 맡아 순서대로 돌고 있다고 한다. 그의 과수원은 네번째다. 하지만 이날 현재 두번째 과수원의 작업도 마치지 못했다. 그는 “5월12일부터 독촉 전화를 했지만 ‘기다리라’는 답변뿐이었다”고 답답해했다. 그의 과수원 열매솎기 작업은 기자가 다시 찾은 6월2일에서야 시작됐다.

인근의 이희필씨(61·직산읍 석곡리) 과수원으로 장소를 옮겼다. 최씨에 비해 사정이 나아 보였다. 어렵사리 인력을 구해 솎기작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씨도 어려움이 있기는 마찬가지란다. 올해 배 착과가 아주 잘돼 솎아야 할 열매가 지난해에 비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그만큼 인건비 부담이 늘고 일손도 더 많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씨는 “공급받을 수 있는 인력은 한계가 있는데 작업량은 지난해에 비해 배 가량 늘어나 어렵기는 마찬가지”라고 토로했다.

그는 천안 지역에서 배농사 규모가 큰 농가 중 하나다. 매년 열매솎기 작업에 300명 가량을 투입했는데 올해는 500명 정도는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서는 하루에 40명 정도를 동원해야 하는데 현재 20명만이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인건비가 더 들어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쳐도 작업 적기를 놓치는 것이 큰 문제”라고 밝혔다. 모든 농작업이 마찬가지지만 배 열매솎기도 적기가 있다는 것이다. 천안 지역의 경우 5월20일까지는 솎기를 마쳤어야 했다.

이혁재 천안시농업기술센터 배팀장에게 전화를 걸어 열매솎기 지연에 따른 피해에 대해 물었더니 “솎기가 늦어지면 배의 초기 비대가 약해져 과실의 크기가 작아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뿐만 아니라 솎기작업이 늦어지면 배 봉지 씌우기도 연쇄적으로 늦어져 배 수출에 차질을 빚을 수 있는 상황이다. 미국으로 배를 수출하기 위해서는 식물 병해충 방역상의 문제 때문에 6월20일까지 봉지 씌우기를 완료해야 하는데 솎기작업만 해도 6월15일까지는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현 상황에서 이 일정을 맞추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결국 일손 부족 문제는 그 자체로도 문제지만 2차, 3차 피해를 야기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동행한 심훈기 천안배원예농협 상무는 “6월20일 이후 배 봉지가 씌워져 있는지에 대해 불시점검을 실시하는데 봉지가 씌워져 있지 않은 농가는 미국측으로부터 수출 계약을 파기당할 수도 있다”고 걱정했다.

마지막으로 들른 지순태씨(48·성환읍 율금리) 과수원에서 지씨에게 인건비에 대해 물었다. 일손 부족이 심해지면 인건비도 자연히 올라갈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지씨는 “말도 마라”며 손사래를 쳤다. 솎기작업의 경우 지난해까지 일당이 4만5,000원이었으나 올해 5만원으로 올랐고, 봉지 씌우기도 1장당 45원에서 50원으로 올려 달라는 요구가 나오고 있다고 한다.

지씨는 최근 겪은 황당한 일도 들려줬다. 솎기작업을 해 주기 위해 오기로 했던 작업팀이 “봉지 씌우기 단가를 장당 50원으로 올려 주지 않으면 갈 수 없다”며 작업 당일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 지씨는 “한 해 배봉지 50만장을 씌우는데 5원 올려주면 250만원이 더 들어간다”며 “약속까지 해 놓고 오지 않으면 가뜩이나 일손이 부족한 농가는 어떻게 하란 말이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부인과 작업에 나섰다. 그 모습을 보고 그냥 올 수 없어 팔을 걷어붙이고 함께 열매를 솎았다. 하지만 작업은 더디기만 했다. 1시간을 꼬박 솎았지만 3그루도 채 마치지 못했다. 땀은 비 오듯 쏟아졌다. ‘일손만 많다면 정말 좋겠다’라는 생각이 마음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번 취재에서는 일손 부족이 심해지면서 농업인들은 작업팀들과의 관계에서도 힘없는 ‘을’의 입장에 놓이고 있음을 느꼈다. 작업팀이 일하는 것이 마음에 안 들어도 싫은 소리 한마디 못하고 인건비를 올려 달라는 요구도 외면할 수만은 없다고 하소연했다. 자신의 과수원이 경사가 심하거나 작업 여건이 좋지 않은 곳에 있을 경우 작업 차례가 한없이 뒤로 밀리기도 한단다.

한 농가는 “마음 같아서는 사람 안 쓰고 내가 직접 다 하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는 없지 않느냐”며 “일손이 부족해지다 보니 이래저래 어려움만 늘어나고 있다”고 한숨만 내쉬었다.

최예천 씨는 “지역에서 인건비가 높아지는 분위기가 한번 조성되면 개별 농가 차원에서는 ‘울며 겨자 먹기’로 이에 따라야 한다”며 “농가라고 무조건 인건비를 낮추자는 것이 아니라 작업팀과 협의체를 구성해 생산비를 감안한 적정 수준의 인건비를 논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012.06.13 농민신문/천안=서륜, 사진=김주흥 기자 seolyoon@nongmin.com]